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112 - 설거지에 관한 소고
    카테고리 없음 2021. 10. 24. 18:46

     

    건드려서는 안될 것을 쉽사리 건든다. 톡 건드는 것도 아니고 너무하다 싶을 만큼 마음을 한바탕 휘젓는다. 자극적인 어휘와 원색적인 조롱이야말로 환호받는다. 그것이 디시인사이드식 담론의 특징이다.

     

    그러나 너무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디시인사이드에서의 담론은 놀이에 지나지 않으며, 불쾌감을 주는 것이 놀이의 규칙이다. 담론의 내용과 현실은 그들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 자극과 재미가 있다면 그만이다. 놀이란 그런 것이 아니던가? 놀이터에 도덕을 가져와서는 안되는 법이다.

     

    '설거지 담론'도 그렇다. 설거지 담론은 계몽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담론이라기보단 비하와 조롱에 훨씬 가깝다. 비록 전파 과정에서 살이 덧붙여져 진짜 담론과 비슷한 성격을 띄게 되었지만, 그 이야기 자체의 의미보다도 정곡을 찔린 당사자의 불행을 조롱하고 관찰하고자 하는 성격이 강하다. 

     

    '설거지 담론'은 그 화제성에 비해 대상이 되는 사람은 소수이다. 당장 이 글을 적는 나도 쑥맥이긴 하지만, 호구잡힐만큼 자산이 많지는 않아 안전하다. '헬조선 담론'이 청년 모두가 대상이었고 공감할 수 있는 문제였던 것과 대조적이다. '설거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는 사람은, '성공한 쑥맥' 뿐이다. '쑥맥'은 아직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만, '성공한 쑥맥'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설거지 담론'이 화두에 오르게 된 것은 말이 주는 담백한 느낌과 대비되는 신랄한 내용 때문이 아닐까 싶다. '헬조선' 처럼 차라리 솔직한 단어라면 모를까, '설거지' 와 같은 일상적인 어휘에 적절한 비유로 강렬한 인상을 담아낸 것은, 의도한 부분이라면 존경심이 생길 정도이다. 그런 점에서 '설거지 담론'은 지금까지의 어떤 담론보다도 자극적이다.

     

    개인적으로, 삶은 주어진 것을 잘 경영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불행은 너무 많은 것을 바라면서 시작되고, 행복은 결핍을 느낄 때 시작된다. 때문에 주어진 것을 이해하고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어야 행복에 다가갈 수 있다. 피나는 노력의 결과가 '퐁퐁단' 이라는 멸칭으로 불리는 것이 안타깝기야 하지만, 어디까지나 과욕으로 말미암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노력은 성공을 담보하지만, 성공이 담보하는 것은 예쁜 마누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해해서는 안된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