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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 성숙함에 대한 소고카테고리 없음 2024. 10. 23. 17:58
스스로에게 하는 거짓말과 다름없기에,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명목과 실제를 다르게 말하는 것을 무척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오늘의 자신이 한없이 작게 느껴지는 것은, 직장에서 꼴사납게 말싸움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거짓된 명목을 두른 스스로가 비겁한 인간처럼 느껴져서이다. 비록 바라는 바는 이루었을지언정, 조금은 후회가 남는다. 한편으로는 건전한 방법만을 고수하는 답답한 인간은 언제까지고 당하고 살 뿐인것은 아닐까. 오늘 질러버린 박치기의 동력은 그런 불안감과 불만이었다. 모든 일이 그렇다. 수고와 배려를 알아주기만을 바라서는 언제까지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백마 탄 왕자같은건, 적어도 내 주변엔 없다. 그럼에도 작게나마 후회가 남는 것은 왜일까. 주절주절 변명을 적었지만,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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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 조르바에 대한 소고카테고리 없음 2024. 5. 19. 08:45
최근엔 를 다시 읽고 있다. 군복무시절 선임에게 추천받아 읽었는데, 당시에는 끝까지 읽지는 못한 책이다. "검지 하나가 왜 없느냐고요? 질그릇을 만들자면 물레를 돌려야 하잖아요? 그런데 왼손 검지가 자꾸 걸리적거리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도끼로 내리쳐 잘라 버렸어요." 내 기억이 맞다면, 이야기에서 가장 처음 등장한 조르바의 '기행'이다. 조금 독특하다 싶은 그의 생각은 대화를 통해 얼핏 엿볼 수 있었으나, '물레를 돌리는 데 방해가 되어서' 스스로의 손가락을 자른 그의 행동, 그것도 도끼로 직접 내려 쳐 잘랐다는 점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네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라며, 우리는 타인의 사상은 쉬이 긍정하며 이해(한 척)한다. 하지만 하찮은 이유로 자신의 손가락을 절단하는 것까지 긍정할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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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 설거지에 관한 소고카테고리 없음 2021. 10. 24. 18:46
건드려서는 안될 것을 쉽사리 건든다. 톡 건드는 것도 아니고 너무하다 싶을 만큼 마음을 한바탕 휘젓는다. 자극적인 어휘와 원색적인 조롱이야말로 환호받는다. 그것이 디시인사이드식 담론의 특징이다. 그러나 너무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디시인사이드에서의 담론은 놀이에 지나지 않으며, 불쾌감을 주는 것이 놀이의 규칙이다. 담론의 내용과 현실은 그들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 자극과 재미가 있다면 그만이다. 놀이란 그런 것이 아니던가? 놀이터에 도덕을 가져와서는 안되는 법이다. '설거지 담론'도 그렇다. 설거지 담론은 계몽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담론이라기보단 비하와 조롱에 훨씬 가깝다. 비록 전파 과정에서 살이 덧붙여져 진짜 담론과 비슷한 성격을 띄게 되었지만, 그 이야기 자체의 의미보다도 정곡을 찔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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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 설명에 관한 소고카테고리 없음 2021. 9. 16. 17:59
한 때 중산층이었던 만큼, 내가 물려받은 아비투스는 제법 고상한 편이다. 최소한의 교양은 지킬 줄 안다는 말이다. 밥상머리 예절로 예를 들자면, 먹을때 쩝쩝거리지 않고, 복스럽게 먹기보단 깔끔하게 먹고자 한다. 나아가, 식사 중 밥에 양념을 묻히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나에게 있어서 ‘아비투스’의 발견은 꽤 충격적이면서도 기쁜 것이었다. 아비투스의 생성과 충돌에 대한 의문을 해소해 주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혼자만의 담론이 아니라는 점이 기뻤다. 의문이 생겼을 때 혼자만의 힘으로 그럴싸한 해답을 내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원인과 근거를 아는 범위 내에서 적절하게 조달해 오는 것이 보통 수고가 아닌 것은 물론, 제대로 검증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담론을 나눌만한 통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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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 보편에 관한 소고카테고리 없음 2021. 8. 24. 21:37
재화의 소비량과 해당 소비로 인한 만족도가 반비례한다는 의미의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은 인간 심리의 특성을 기반으로 한 이론으로, 증명 가능한 어떤 과학적 사실을 근거로 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이것은 ‘법칙’으로서 인정받고 있다. 그 이유는 감소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을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공감한다는 강력한 보편성을 가지는 것이다. 악기바리가 즐겁지 않은 것 처럼, 밥을 두 공기고 세 공기고 계속해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처럼, 설령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더라도 진리인 것들이 몇 가지 있다. ‘맞으면 아프다’는 인류가 신경과 뇌의 구조, 작용과 반작용을 알기 이전부터 진리였을 것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이유를 설명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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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 매몰에 관한 소고카테고리 없음 2021. 8. 20. 21:12
비정상적인 과금 유도로 유명한 게임 리니지에 여전히 열광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매몰비용이라는 경제용어로 해설한 유튜버가 인기이다. 종종 리니지 유저들을 별종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비단 이들만 매몰비용에 연연하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소위 말하는 ‘손절’을 못하는 것도, 리니지 유저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콩고드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무언가에 매몰되는 것은 누구나가 일상에서 한 번쯤은 경험해 봤을 만큼 보편적인 것이다. ‘매몰’은 땅에 묻고埋 물에 가라앉힌다沒는 의미의 한자로 구성된다. 사전에는 ‘보이지 않게 파묻히거나 파묻음’ 이라는 의미로 풀이되어 있다. 우리가 경험하는 대부분의 매몰은 ‘파묻는 것’ 보단 ‘파묻힌 것’에 가까울 것이다. 글로 적으니 어쩐지 피해자처럼 보인다. ‘파묻힌 것’은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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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 상대주의에 대한 소고 1카테고리 없음 2021. 8. 5. 20:11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을 신봉했던 모더니즘은 너무나도 이성적이었던 나치에 의해 무너져 내렸다. 이후, 필연적으로 감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득세하게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득세하고 50년 남짓이 지난 지금, 어쩐지 그 끝이 보일 것 같아 흥미진진한 요즘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해체주의’-의심과 물음의 제기-로 대표되며, 모더니즘을 해체해 가는 과정에서 다양성과 상대주의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하지만 모든것을 존중한다(해야한다)고 말하는 상대주의는, 오직 하나만을 존중하는 절대주의의 존재로 인해 반드시 스스로 모순될 수 밖에 없다. 상대주의는 절대주의를 긍정할 수 없다는 태생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전에도 적었던 내용이지만, 나는 고전적인-고리타분한- 인간이다. 감성보단 이성으로 생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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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 음침함에 관한 소고카테고리 없음 2021. 8. 3. 19:08
사회심리학에 자기개시(自己開, Self-disclosure)라는 개념이 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솔직한 내면을 드러내는 것이 인간관계에 도움이 된다는 의미이다. 비밀을 공유하는 사람과 빠른 속도로 친해지게 되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비밀과 진심을 공유하는 것에는 그런 힘이 있다. 어쩌면 알게 모르게 모두가 조금씩은 느끼고 있는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간혹 매력적인 거짓말쟁이 캐릭터가 미디어에서 보이는 경우는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현실의 거짓말쟁이는 친구가 많지 않고, 별로 매력도 없다.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을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가치판단에는 도덕이나 맥락보다는 ‘불쾌감’이 먼저 끼어든다. 우리는 알 수 없는 것에서 본능적으로 공포와 불쾌감을 느낀다. 어둠이 무서운 이유는, 어둠 너머에 ..